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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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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상 마르코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에게 처음 바이올린을 가르쳐준
사람은 다름아닌 아버지였다.

15세때 삭발하고 하급성직자가 된 그는 25세때 서품을
받아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9월 그는 베네치아
오스페달로 델라 피에타 여자양육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취임했다.

피에타 양육원은 여자 고아들만 모아 보육하는 일종의
고아원으로서 특히 음악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비발디는
실기 지도는 물론이고 원생들로 구성된 피에타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아 했으며 그들을 위해 여러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이 대체로 아름답기는 하나
다소 나약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이유는 주로
여자아이들을 위해 쓴 곡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 그는 미사곡, 모테토, 오라토리오 등 교회를 위한
종교음악도 다수 썼다. 또한 오페라에도 손을 대는 등
허약한 체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힘으로 창작활동을 해나갔다. 그의 속필은 특히 유명해, 전문 사보가들의 사보 속도보다도 더 빨리 풀 스코어를 써 제끼곤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현을 위한 협주곡만도 400곡을 넘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작품마다 특색이 별로 없다는 흠을 남기기도 했으나 뒷날 비인 고전파의 모차르트, 베토벤 등에 의해 확립된 독주협주곡의 선구자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공로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오페라 흥행에 손을 대고 여가수 안나 지로와의 연문을 뿌리는 등 사제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그 때문에 빈축을 사서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그는 각지를 전전하다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객사해 그곳의 빈민묘지에 묻혔다.

바이올린 연주에도 초인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던 그는 자만심이 강하고 낭비벽이 심해 갖가지
일화를 많이 남겼다.

생일이 둘인 허약한 칠삭둥이 비발디의 생일은 1678년 3월 4일, 혹은 같은 해 5월 6일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세상에 인생 출발을 두 번 했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들어본 적이
없는 즉, 어느 쪽이 진짜인지 좀더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후자인 5월 6일이 그의 생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그날이 바로 그가 공식으로 세례를 받은 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직접 낳은 어머니의 말은 조금 다르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출생의 위기를 넘기고
이제는 정상아처럼 자라리라 확신이 서게 되었을 무렵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실토했다고 한다.

"그날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1678년 3월 4일이었지요. 아마 점심때쯤이었을 거예요. 갑자기
천둥 치는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큰 지진이 저희가 살던 베네치아를 뒤흔들었어요. 그때 저는
안토니오를 가진 지 일곱 달밖에 안되었는데 집이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큰 배를 감싸쥘 겨를도
없이 벽에 가서 쾅 부딪쳤어요. 순간 저는 정신을 잃었지요. 깨어나서 들으니, 그때의 충격으로
안토니오가 태어났다지 뭐예요? 팔삭등이가 살면 얼마나 살까 싶어 세례도 미루다 백일이 되도록 용케 목숨이 붙어 있기에 그해 5월 6일에야 세례를 받은 거랍니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전자인 3월 4일이 비발디의 진짜 생일인 셈이다.

15세 되던 해인 1693년 9월 18일 비발디는 삭발하고 올레오 수도원에 입문했다. 그러나 칠삭둥
이로 태어난 이래 줄곧 시름시름 앓으면서 간신히 자란 몸으로 정상적인 사람도 견디기 힘든
수도사 생활을 해나가기란 아무래도 무리였다, 수도원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그만은 특별히
집에서 다니면서 신학 공부를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그 덕에 소년 비발디는 집에서 아버지에게
바이올린 지도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나중에 그가 바이올린의 대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뒷날 그가 매일같이 작곡을 비롯한 갖가지 격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 친구가
충고를 했다.
"몸도 돌봐야지. 제발 건강 생각 좀 하라구." 그러자 비발디는 가볍게 되받아 말했다.
"그런 소리 말게. 난 어릴 때부터 건강이 신통치 않아 얼마나 많은 덕을 보았다구."

비발디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인으로서는 드물게 머리색이 붉어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다. 25세 때인 1703년 3월23일, 마침내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가 된 후로도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길은 결코 곱지 않았다. 물론 사제로서의 그의 행실에 문제가 없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그에게 붙여진 '붉은 머리 사제' 라는 별명도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발디를 스페인의 투우장에 보내면 힘들게 붉은 헝겊을 휘두를 필요없이 머리털만 들이대면
소하고 좋은 대결이 되겠다."
"붉은색 머리는 악마의 머리이지 사제에게 걸맞는 머리는 절대로 아니다."

온갖 비웃음과 극언을 참다 못해 비발디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나뭇잎이 붉어지면, '오! 아름다운 단풍이여!' 하고 감탄하면서
머리털이 좀 붉기로 그렇게까지 헐뜯을 건 뭐냐 그말이야."

성직자가 된 후에도 비발디는 천주님보다는 바이올린을 더 열심히 섬겼다. 미사 전례를 걸핏하면
빼먹어 동료들이 한참 찾아다니다 성당 으슥한 구석에서 약음기를 끼고 바이올린을 열심히 켜고
있는 그를 발견하는 일도 비일비재였다. 자연히 그는 사이비 사제로 사람들 눈에 비칠 수밖에
없었고, 그의 그러한 행실은 주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주교는 대노해 당장 그를 불러들였다.

"그대는 하느님이 두렵지 않은가? 하느님은 그대가 하는 짓을 다 알고 계시니, 하느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 ."
"잠깐만, 주교님, 저는,,, "

비발디는 성난 주교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저는 하느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주교는 무슨 날벼락 맞을 소리냐는 듯 더한층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무슨 불경한 말을 하고 있는가? 하느님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네, 그것은 바이올린 E선을 제7포지션으로 눌렀을 때의 '라' 음입니다."

붉은 머리 사제"에게 붙어다니는 일화 가운데 미사를 올리는 도중에도 돌연 영감이 떠오르면
성구 보관실에 숨어 푸가를 작곡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는데, 정작 비발디 자신의 해명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허약해 선 채로 미사를 올려야 하는 직무를 끝까지 수행하기 어려워
잠시 쉬기 위해 자리를 떴을 따름이다."

어쨌든 성직자로서의 그의 근무 태도는 과히 성실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작곡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기도책과 염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가 쓴 악보
첫머리에 LDBMDA("축복받은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여 아멘"이란 뜻)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곡이
적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의 신앙심이 결코 얄팍하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그의 이러한 이중성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먼저 베네치아의 당시 분위기를 잠시 살펴
보기로 하자. 그 무렵의 베네치아는 세계 제일의 무역 항구도시였을 뿐만아니라 전 유럽의 음악의
중심지 이기도 했다. 거친 뱃사공들과 음악가를 꿈꾸는 할일 없는 몽상가들이 우글거렸으니
성관계가 문란할 수밖에. 거리에는 사생아며 고아들이 넘쳤고 갓난아기를 교회 문앞에 버리는
일쯤은 예사로 여겨질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베네치아를 찾은 양식 있는 외국 인사들이 이런 말을
했겠는가.

"이탈리아인, 특히 베네치아 사람들은 생애의 절반은 종교에서 말하는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하느님의 용서를 비는 데 바치고 있다."
따라서 언뜻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비발디도 특별히 별난 베네치아인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올 법도 하다.

사계의 순서는? 두 젊은이가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계라고 하면 봄, 겨울, 가을, 여름 순서 아니겠어?"
상대편 젊은이는 몹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즉각 반박했다.
"무슨 순서가 그래? 사계절이라고 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니야?"
그러자 처음 말한 젊은이도 지지않고 대꾸했다.
"자네,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이군. 내가 말한 순서는 비발디의 유명한 협주곡 <사계>의 기호도를 말한 것이야."

알토 가수 안나 지로와의 염문 1723년, 즉 나이 45세 무렵부터 비발디는 알토 가수 안나 지로와의
관계가 범상치 않게 깊어졌다. 지로는 프랑스에서 이민 온 가발제조공의 딸로 비발디에게 성악을
배운 제자였다. 비발디가 노래 실력도 대단치 않은 그녀를 자기 오페라에 자주 등장시켰으므로 두
사람의 관계는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안나의 동생 파올리나가 비발디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그들 자매와 비발디는 아예 한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동생활은 더욱
흥미있는 가십거리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고, 마침내 교회에서 들고 일어나 그의 오페라 상연을
금지시키는 한편 고아원을 위한 음악까지도 다른 작곡가에게 넘기도록 엄명을 내렸다.
안나를 비발디의 정부로 단정한 사람들은 연일 아우성을 쳤다.

"명색이 사제라는 자가 불륜의 관계를 맺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이 도시에서
쫓아내라! "
견디다 못한 비발디는 결국 안나를 데리고 오스트리아의 비인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의
스캔들은 이미 그곳에까지 퍼져 있었다. 한 친구가 그를 보고 빈정거렸다.
"어설픈 사랑을 하다 고향에서 쫓겨났다면서?"
자만심 강하고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비발디가 그런 비웃음을 순순히 받아넘길 리 없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큰 소리로 말했다.
"쫓겨나다니? 난 단지 사랑과 베네치아를 맞바꾸었을 따름이라구!"

비발디는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전 유럽에 이름을 날렸으며, 사실 작곡가로서보다 바이올리니스트
로서 더욱 유명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비발디 자신은 작곡가로서 더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만큼 당시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극작가 골도니의 비발디 평에 대해서는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골도니의 평인즉 이러했다.

"비발디는 바이올린 주자로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사제로서는 영점이다."
골도니는 원래 법률을 공부하다 희곡을 쓰는 일로 전향한 사람이었다.
비발디는 다음과 같은 골도니에 대한 평으로 응수했다.
"골도니는 험담가로서는 만점, 극작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이고, 법률가로서는 영점이다."

비발디는 워낙 작품을 많이 썼으므로 사실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곡들이 여러 곡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크 음악의 대들보라 할 독일의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는 7세 연상인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를 몹시 존경해 그의 현악협주곡 중 몇 곡을 건반악기용으로 편곡하기까지 했다. 비발디가
<화성의 영감>이라는 곡명으로 발표한 작품 3의 전12곡 가운데 6곡을 골라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한 것도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2백여년이나 지난 뒤에 태어난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비발디
평은 바하와는 퍽이나 대조적이었다. 그는 곡마다, 심지어는 한 악절 중에서도 몇 소절마다 박자를 바꿀 정도로 변화를 추구하는 작곡가였다. 그 때문인지 비발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스트라빈스키가 "똑같은 곡을 100곡이나 쓴 사람 아니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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